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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선거 단타 고액 과외선생’ 김종인, ‘킹 메이커’ 이번엔? [홍영식의 정치판]
한국경제 | 2021-12-05 09:23:55
‘선거 고액 단타 과외 선생’, ‘킹 메이커’, ‘해
결사’….

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으로 합류하는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붙는
별칭이다. 그는 제11, 12, 14, 17, 20대 국회의원 5선 모두 비례대표를 지낸
특이한 정치 이력을 가졌다. 좌우·여야 정당을 넘나든다는 것도 마찬가
지다. 선거 때마다 각 정당들은 그에게 구애를 보냈다.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
재인 대통령 모두 그의 손길을 거쳐 대통령이 됐다.

그의 정치 이력은 보수 정권에서 시작됐다. 1980년 신군부 국가보위입법회의 전
문위원을 지낸 뒤 이듬해 민정당 전국구(비례대표)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. 1
987년 헌법 개정 때는 이른바 ‘경제 민주화 조항’을 주도적으로 만
들었다. 노태우 정부 때는 보건사회부 장관, 대통령 경제수석도 역임했다. 200
4년 제17대 총선 때는 정치 행로를 바꿔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 의원이 됐다.

그가 ‘전략가’로 선거판에 본격 뛰어든 것은 2012년 대선을 준비하
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게 정치적 조언을 하기 시작하면서다. 2011년 정치권
에 혜성 같이 등장해 전국 순회 ‘청춘 콘서트’로 정치적인 주가를
한창 올리던 안 대표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와 대선 주자로 급부상했다. 안
대표가 김 전 위원장에게 조언을 구하면서 김 전 위원장은 ‘안철수의 멘
토’라는 소리를 들었다.

이후 2012년 9월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제안을 받고 당 국민행복추
진위원회 위원장 겸 경제민주화추진단장을 맡았고 2016년엔 4·13 총선을
3개월 정도 앞둔 1월 민주당에 합류했다.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표는 삼고초려
끝에 모셔왔다고 했다. 문 대표는 위기에 몰렸다. 의원들이 탈당한 안철수 의
원을 뒤따랐기 때문이다. 문 대표는 대표직에서 물러났고 김 전 위원장이 비대
위 체제를 물려받았다. 민정당→민주당→새누리당→민주당→국
민의힘
문 대표가 물러났지만 실질적으로 뒤에서 권한을 행사하고 김 전 위원장은 관리
형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.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은 ‘차르
(구러시아 황제)’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전권을 휘둘렀다. 이해찬 전
총리, 정청래 의원 등을 공천에서 쳐냈다. 위기감을 느낀 최대 계파 친노(친노
무현)계의 견제가 시작됐다. 그러자 김 전 위원장은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구기
동 자택 칩거에 들어갔다. 문 대표가 경남 양산 자택에서 급히 서울로 올라와
설득했고 김 전 위원장은 당무에 복귀했다.

2020년 다시 선거판에 돌아왔다. 미래통합당(현 국민의힘) 총괄선거대책위원장
직함을 달고서다. 황교안 당시 통합당 대표의 ‘삼고초려’ 형식이
었다. 하지만 이번엔 너무 늦었다. 선거를 불과 한 달 앞두고 들어온 그는 &ld
quo;의석 과반을 확신한다”고 자신했지만 판세를 뒤집지 못했다. 선거 패
배 뒤 그는 당내 거센 찬반 논란 끝에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고 지난 4·
;7 재·보선 승리에 기여했다.

그가 좌우 여러 정당들을 두루 섭렵한 이력도 특이하지만 항상 ‘뒤끝&rs
quo;이 좋지 않았다는 공통점도 있다. 김 전 위원장은 안 대표가 지난해 정치권
에 다시 등장한 이후 “(안 대표가) 앞으로 어떤 생각을 갖고 정치 활동을
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알 필요도 없다”, “이분이 정치를 제대로
아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자리를 뜬 적이 있다”고 하는 등 늘 부정적으로
평가했다.

2012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 뒤에도 둘 사이는 틀어졌다. 대선
직전 대기업 순환 출자 해소 문제로 부딪친 게 직접적 요인이었다. 김 전 위원
장이 대기업의 기존 순환 출자도 해소해야 한다는 데 대해 당시 박근혜 후보는
“신규 출자만 규제하자”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.

김 전 위원장은 “내가 공약을 책임지면서 준비했는데 나와 사전에 한마
디 의논도 없이 핵심 공약 가운데 하나(순환 출자 규제)를 안 한다고 말할 수
있느냐. 당신이 싫다면 내 갈 길을 가면 그만”이라고 따졌다(자서전 &ls
quo;영원한 권력은 없다’).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완전히 틀어졌다. 20
16년 민주당 비대위를 이끌고 총선 승리를 견인했지만 친노의 견제로 결국 김
전 위원장은 당을 떠났다.

지난 ‘4·7 재·보궐 선거’가 끝나자마자 김 전 위원
장과 국민의힘 당 주류 세력 간 주도권을 놓고 힘겨루기가 벌어졌다. 선거를 승
리로 이끈 김 전 위원장이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난 윤석열 현 국민의힘 대선 후
보에게 손을 내밀면서 ‘킹 메이커’ 역할에 나선 것이란 관측이 나
왔다. 국민의힘 주류도 윤 후보에게 러브콜을 보내며 영입 판 만들기에 나서면
서 그를 사이에 두고 양측이 ‘쟁탈전’을 벌였다.

당시 김 전 위원장은 국민의힘을 향해 ‘아사리판’이라고 비판했다
. 이에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김 전 위원장을 겨냥, ‘노욕에 찬 기술자
정치인’, ‘희대의 거간 정치인’이라고 공격했다. 김병준 국
민의힘 선거대책위원장은 김 전 위원장이 1993년 동화은행 비자금 수수 혐의로
유죄 판결을 받은 것과 관련, “(윤 후보가) 어마어마한 돈의 뇌물을 받
은 전과자의 손을 잡겠나”라고 했다. “윤석열, 검찰 리더십 고수하
다 호된 교훈 얻어”
이런 구원(舊怨)이 윤 후보가 김 전 위원장을 총괄선대위원장으로 영입하는 문
제를 놓고 지루하게 벌어진 갈등의 뿌리다. 윤 후보의 구상은 ‘김종인 총
괄선대위원장-김병준 선대위원장’ 체제였다.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은 자신
을 공격한 김 위원장과는 함께할 수 없다는 뜻이 확고했다.

윤 후보가 자신을 ‘노욕’이라고 빗댄 장제원 의원을 후보 비서실
장으로 삼는 데도 강하게 반대했다. 장 의원은 뜻을 접었지만 김 위원장은 그대
로 버텼고 윤 후보도 그에게 힘을 실어 주는 바람에 김 전 위원장은 쉽사리 선
대위에 들어올 수 없었던 것이다. 여기에 더해 ‘김종인 키즈’로 불
리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“김 전 위원장을 영입하려면 프리미엄을 더
얹어야 한다”고 주장하면서 윤 후보 측과 맞섰다.

이 대표는 윤 후보의 충청 방문과 자신의 동행 사실을 미리 통보 받지 못했고
자신의 반대에도 이수정 공동선대위원장을 영입한데 대해 ‘패싱’당
했다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터뜨리더니 당무 ‘보이콧’을 벌이기까지
했다. 선대위 구성에 전권을 달라는 김 전 위원장에게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
윤 후보 측 중진이 맞서면서 국민의힘은 한 달 내내 자중지란에 빠졌다.

김 전 위원장이 권성동·장제원·윤한홍 의원 등 윤 후보 측근을
향해 ‘문고리 3인방’, ‘자리 사냥꾼’이라고 공격하고
이 대표가 ‘하이에나’, ‘파리떼’라고 거들자 윤 후보
측이 “상왕 행세하느냐”는 등 저질 언사들을 주고받으면서 볼썽사
나운 모습을 보였다. 이 과정에서 윤 후보는 조정 능력을 전혀 보여주지 못한
채 정치 리더십 부재를 고스란히 드러냈다.

윤 후보와 김 전 위원장 갈등의 배경엔 킹이 되려는 사람과 킹 메이커 간 주도
권 잡기, 자존심 대결도 내포돼 있다. 김 전 위원장이 박 전 대통령, 문 대통령
과 함께 일할 때도 그랬다. 김 전 위원장과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국민의힘의
한 의원은 “김 전 위원장은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선 온전히 자
신의 구상대로 따라와야 한다는 것을 철칙으로 여기고 있고 이에 조금이라도 반
하는 일이 있다면 여지없이 선을 긋는 성격”이라고 했다.

반대로 윤 후보는 선대위는 어디까지나 후보가 중심이 돼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
자신의 구상대로 구성돼야 한다는 뜻이 강하다. 윤 후보는 청년들과 만난 자리
에서 “킹 메이커는 국민과 2030 여러분”이라고 했다. ‘김종
인 킹 메이커’에 대한 거부감이 담겨 있다.

그러나 당내 분란에 대한 여론이 악화하고, 윤 후보의 지지율이 급락하자 비상
이 걸렸다.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“이러다가 선거를 다 망친다”며
윤 후보와 이 대표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. 당내에선 윤 후보가 이 대표를
끌어안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수습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.

결국 김기현 원내대표의 중재로 윤 후보가 지난 3일 울산까지 내려가 이 대표
를 만나 갈등을 봉합했다. 김 전 위원장도 총괄선대위원장 직을 전격 수용했다
. 윤 후보가 김 전 위원장이 ‘원톱’임을 분명히 하면서 김병준 위
원장과의 서열 관계를 확실히 했다.

한달 싸움을 통해 윤 후보는 적지 않은 리더십 상처를 입었다. 그의 한 측근은
“검찰 리더십과 정치 리더십은 차원이 다르다”며 “윤 후보
가 상명하복, 일사분란의 검찰 관습을 떨쳐버리지 못하다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
유연성과 포용, 강고함 등이 어우러질 필요가 있는 보다 복잡한 정치 리더십의
중요성을 배우게 됐을 것”이라고 말했다.

결과적으로는 김 전 위원장과 이 대표 ‘콤비’가 승리를 거둔 것으
로 볼 수 있으나, 결국은 한 발 물러선 윤 후보도 ‘플러스 게임’이
됐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. 이로써 김 전 위원장은 다시 한 번 킹메이커에 도
전하게 됐다.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. 그리고 그 뒤끝은?

홍영식 논설위원 겸 한경비즈니스 대기자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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